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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우승은 극적이었다. 2010년대 초중반 영입한 젊은 선수들이 팀의 주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앞으로도 밝은 미래를 예고했고, 그 해 휴스턴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에 시름하던 지역 팬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선물을 주었으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팀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를 꺾고 일궈낸 우승에다 팀 창단 첫 우승이어서 더욱 감동이었다.

하지만 애스트로스가 휴지통 때리기, 전자 기기 사용 등을 통해 상습적으로 사인을 훔쳤다는 MLB 사무국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이들의 우승은 상당히 퇴색되고 만다.

2014년 6월 미국의 유명 스포츠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7월호의 표지를 장식할 메인 토픽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보통 NBA, NHL 우승팀이 결정되는 시기인데 두 파이널 다 5차전(6월 중순)에서 끝나는 바람에 커버스토리로 쓰기에는 시기가 맞지 않았다. 그다음 후보가 브라질 월드컵 미국 대표팀이었다. 미국은 6월 22일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이길 뻔했으나 인저리타임 때 호나우두의 어시스트로 바렐라가 동점골을 기록하면서 역사적인 경기가 될 뻔한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 물론 경기 내용 자체만으로도 미국에게는 큰 이슈였으나 표지를 장식하기엔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미쉘 위(위성미)의 첫 메이저(U.S. Women's Open) 우승이 거의 커버스토리로 쓰일 뻔했으나, Ben Reiter라는 기자의 황당한 기사 한 방에 묻히고 말았다. 결국 2014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커버스토리는 MLB 휴스턴 애스트로스(Houston Astors)가 2017년 월드시리즈를 우승할 것이라는 예언으로 결정됐다.

문제(?)의 2014년 7월호

이 기사가 황당한 이유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이 당시 MLB 최약체 팀이었기 때문이다. 애스토르스의 2011년 ~ 2013년 승패는 162승 324패로 4할 승률도 안된다. 이때 Astros의 별명이 Lastros(Last + Astros), Disastros(Disastor : 재앙 + Astros 또는 Disastrous에서 u만 뺌)일 정도로 절망적인 팀이었다. 

아마존에서 직구한 책이다.

「Astroball : The New Way to Win It All」(애스트로볼 : 우승을 위한 새로운 방법)은 Ben Reiter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취재하면서 이 팀이 최약체에서 2017년 최강이 되는 리빌딩 과정을 그린 책이다. 구단은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 제프 러나우 단장과 NASA 연구원 출신 시그 메이달 전력분석총괄을 영입하면서 시작한 Data 야구를 기반으로 현재의 애스트로스 주축 선수들을 영입하게 된다. 그들이 함께 영입한 주요 선수들이 호세 알투베(2014년 타격왕, 2017년 NL MVP), 달라스 카이클(2015년 사이영상), 칼로스 코레아(2012년 전체 1순위, 2015년 NL 신인왕), 알렉스 브레그먼(2015년 전체 2순위, 올스타 2회), 저스틴 벌랜더(21세기 최고의 투수 중 한 명), 칼로스 벨트란(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로 영입) 등이다. 

책은 러나우와 메이달이 이들을 영입한 이유, 영입하는 과정을 다룬다. 예를 들어 푸에르토리코의 야구천재 칼로스 코레아라는 아이의 연습량과 고교 시절 활약을 기반으로 그가 알렉스 로드리게즈나 칼 립켄 주니어 급의 선수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고, 165cm의 단신 호세 알투베의 발군의 컨택 능력이 얼마나 팀에 큰 도움이 될지를 세세하게 분석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물론 이들의 Data 야구의 실패 사례도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크 트라웃을 영입할 기회를 놓친 것인데, 트라웃이 겨울 날씨 때문에 비시즌이 많아 경기수가 적은 뉴저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2009년 드래프트(당시 러나우와 메이달은 카디널스에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에서 그를 뽑지 않았다. 2013년 드래프트에서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 2015년 NL 신인왕, 2016년 NL MVP, 월드시리즈 우승 주역)를 건너뛰고 전체 1순위로 뽑은 투수 마크 아펠이 결국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지도 못하고 은퇴했으며, 비시즌 동안 전문가의 타격 보정을 받아 강타자로 거듭난 JD 마티네즈(보스턴 레드삭스, 올스타 3회, 2018년 타점왕,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를 방출하기도 했다.(JD 마티네즈의 타격 보정 노력을 간과하고 오로지 데이터에만 의존한 결과다.)

데이터와 통계가 닿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Team chemistry다. 애스트로스 프런트는 2015년 디비전시리즈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결국 2015년 월드시리즈 우승)한테 패한 후, 베테랑 리더의 절실함을 깨닫게 되고 영입한 이가 칼로스 벨트란이다. 그리고 데이터와 통계가 필요없는 선수가 종종 있는데 그가 바로 저스틴 벌랜더(당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에이스)다. 벌랜더가 처음에 애스트로스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한 이유, 카이클의 설득, 트레이드 마감시한 2초 전 잠옷바람으로 밖에 나가 트레이드 서류에 서명한 내용 등을 재미있게 묘사하고 있다. 벨트란은 구단의 기대대로 휴스턴 더그아웃의 큰 형님 역할을 잘 해냈고 벌랜더는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이후 1점대 방어율과 0.65 WHIP로 시즌을 마쳤다. 양키스와 ALCS에서는 2승을 따내며 MVP까지 거머쥐었고, 포스트시즌 동안 4승 1패, 2점대 방어율로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하지만 애스트로스의 우승은 정말로 데이타 야구의 승리일까? 아니면 사인 훔치기의 결과물일까?

코로나19로 2020년 7월말 MLB 시즌이 시작된 이후 8월 13일 현재 호세 알투베는 1할대의 타율을 맴돌고 있으며, 알렉스 브레그먼의 타율은 2할을 겨우 넘기고 있다. 그리고 러나우와 메이달의 작품은 아니지만 표지를 장식했던 조지 스프링어(2011년 전체 11번픽, 올스타 3회, 2017년 월드시리즈 MVP)도 부진을 겪고 있다. 애스트로스는 MLB 최약체 AL 서부 지구에서 5할 승률을 밑돌면서 3위를 기록 중이다. 잘 나가던 시절, 그리고 작년 AL 챔피언의 명성에 비하면 충격적이다. 그러자 야구팬들은 사인 훔치기 안 하니까 성적이 안 좋을 수 밖에 없다고 확인사살을 시켜준다. '2017년 포스트시즌은 과연 양키스가 못하고 다저스가 못한 것일까.' '애스트로스가 사인 훔치기를 안 했다면 포스트시즌 조차 진출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은 영원히 풀리지 않은채 야구팬들의 마음 속을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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